새들

새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
글, 그림, 음악 - 수욱

1. 끄덕, 끄덕

산중턱 깊은 계곡 옆 오래된 성터 앞,
넌지시 누워있는 이름 모를 석상이 미소짓고 있다.
그의 한쪽몸은 폐허의 바닥에 이미 부서져 흩어져 있어도
눈선과 입선은 부러진 머리장식 모양 밑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다.

"그의 곡선 진 한조각 어깨위에
비둘기 한 쌍이 서로 부리를 부비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새들" - 수욱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석상의 뺨을 지나 작은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간다.
또 다른 비둘기쌍이 오후의 휴식을 위해
석상위에 드리운 나뭇가지에 푸드덕 앉는다.
그의 발등에 푸드덕,
곱게 파인 그의 허리위로 푸드덕...,
상긋 서로 인사하듯 푸드덕 푸드덕
그렇게 날개를 털고 앉아
묘미한 소리로 상기된 행복을 서로 나눈다.
구르륵 구르륵, 구르륵 구르륵...

"오늘 그리고 내일을 모두 “지금”속에 담은 듯한
이 석상의 깊은 눈빛은
마치 이 새들의 행복을 같이 나누는 듯 하다. "
"새들" - 수욱

오늘 그리고 내일을 모두 “지금”속에 담은 듯한
이 석상의 깊은 눈빛은
마치 이 새들의 행복을 같이 나누는 듯 하다.
아마도 이 버려진 성터에서 또 다른 세상을 중얼거리고 있는걸까,
그의 입술은 무언가 계속 긴 침묵 사이로 중얼거리고 있다.
마치 비온 후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탁-, 탁-, 톡-톡하고 울리는 평안한 석상의 맥박소리가
아마도 새들에게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그 비둘기들은 그 소리에 맞춰 고개를 가끔씩 끄덕이는 게 아닐까?
한번은 그 어깨위서 끄덕끄덕,
한번은 그 위 나뭇가지위서 끄덕, 끄끄덕,
그리고 저기 발등 위서 끄덕, 끄덕,
저기 곱게 파인 허리위서 끄덕, 끄끄덕.

"... 상긋한 바람이 무더운 오후를 씻으며
저녁이 스며들 때까지,
내일이 지금이 될 때까지."
"새들" - 수욱

아마도 몇백년전 비둘기가, 몇백년후 비둘기가
오늘에 다 모여
이 길게 조용히 누워있는 석상과 속삭이고 있는 것 일까.
그 비둘기들은
석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그렇게 계속 듣고 끄덕이며
가끔 구르르 몸을 떨며 조용히 화답한다.
무엇을 속삭이는지,
여기 저기서 구르르 구르르, 탁-, 탁-, 톡-톡!
그 사이 이 넌지시 누운 이름모를 석상의 은빛 미소는
버려진 빨간 콜라 병마개들과
구겨진 파란 플라스틱 물병에 섞인
그의 부서진 반 몸체 돌 조각 위를 따스히 덮는다.
그래, 그래... 그는 미소짓고,
구르르구르르, 탁-, 탁-, 톡-톡,
새들은 끄덕, 끄덕, 끄끄덕!
그렇게, 그렇게,
상긋한 바람이 무더운 오후를 씻으며
저녁이 스며들 때까지,
내일이 지금이 될 때까지.